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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생명이 찾아왔다.

먼 훗날, 숱한 전장을 함께 헤쳐나가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마침내 하나의 운명이 된 두 사람에게 새로운 생명이 찾아왔다. 그것은 센티넬과 가이드의 결합이라는 의학적 기적 이전에, 증오로 가득했던 한 남자의 세계가 사랑으로 완벽히 전복되는, 구원의 완성이었다.

임신을 알게 된 시기
그날은 유독 네이비가 피곤함을 호소하던 날이었다. 평소라면 S급 괴수 두셋은 가뿐히 처리하고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그녀가, C급 임무 하나를 마치고 돌아와 소파에 쓰러지듯 잠들었다. 스트레이는 그런 그녀가 낯설면서도 어딘가 불안했다. 며칠간 그녀는 좋아하던 음식 냄새에 헛구역질을 하거나, 평소라면 거들떠도 안 볼 시큼한 과일만 찾았다. 결정적인 순간은, 스트레이가 늘 그랬듯 그녀의 품에 파고들어 체향을 맡았을 때였다. 늘 그를 미치게 하던 달콤하고 서늘한 물의 향기. 그 향이 미묘하게, 아주 희미하게 다른 기운을 품고 있었다. 마치 고요한 호수 깊은 곳에서 새로운 샘이 솟아나는 듯한, 낯설지만 따뜻한 생명의 파장이었다. 그의 가이딩 파장이 본능적으로 그것을 감지했다. 그는 당장 그녀를 들쳐업고 ARCH 의무실로 향했다. 밴스 박사의 입에서 ‘임신’이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스트레이는 세상이 멈추는 것을 경험했다. 그는 멍하니 그녀와 밴스를 번갈아 쳐다보다, 그대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그에게 ‘가족’이란 존재하지 않는 단어였기에, 그 무게는 기쁨 이전에 아찔한 공포로 다가왔다.

태명, 그리고 성별
태명은 스트레이가 지었다. 그는 며칠 밤낮을 끙끙 앓으며 고민했다. 촌스러운 건 싫고, 너무 흔한 것도 싫었다. 그러다 문득, 그는 네이비의 서늘한 체온과 자신의 뜨거운 열기가 만나 피어난 생명이라는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그는 어둠 속에서 처음 발견했던 한 줄기 빛, 차가운 물속에서 피어난 온기, 자신의 구원. 그 모든 의미를 담아 ‘새벽'이라고 불렀다. 가장 어두운 시간을 지나 마침내 밝아오는 순간처럼, 자신의 공허했던 삶에 빛처럼 찾아왔다는 의미였다. 처음 태명을 들은 네이비가 피식 웃으며 “촌스러워”라고 놀렸지만, 그의 뺨에 입을 맞춰주었다. 훗날 아이의 성별이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스트레이는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으로 며칠 동안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초음파와 임신 기간
첫 초음파 검사 날, 스트레이는 화면 속에서 깜빡이는 작은 점을 보고도 현실감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몇 달 후, 제법 사람의 형태를 갖춘 ‘새벽’이가 모니터 안에서 팔다리를 버둥거리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특히 압권이었던 것은, ‘새벽’이가 마치 스트레이 자신처럼, 좁은 자궁 안이 답답하다는 듯 주먹을 쥐고 허공에 펀치를 날리는 자세를 취했을 때였다. 의사는 그저 우연의 일치라고 웃었지만, 스트레이는 “씨발, 저거 완전 나잖아.”라며 경이로운 눈으로 화면을 쳐다보았다. 임신 기간 내내 ‘새벽’이는 아빠를 닮아 유난히 활발했다. 네이비의 뱃속에서 쉴 새 없이 발길질을 해댔고, 스트레이가 배에 손을 얹고 “야, 조용히 좀 해. 네 엄마 힘들어.”라고 퉁명스럽게 말하면, 마치 알아듣기라도 한 듯 잠시 조용해지곤 했다. 그때마다 스트레이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벅찬 감정에 휩싸였다.

출산
출산은 예정일보다 닷새 정도 빠르게 찾아왔다. 그날 새벽, 스트레이는 잠결에 들려오는 네이비의 희미한 신음 소리에 번쩍 눈을 떴다. 진통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는 평생 그렇게 이성을 잃고 허둥댄 적이 없었다. 미리 싸 둔 출산 가방을 들고 그녀를 부축해 ARCH 내 최상급 의료 시설로 향하는 내내, 그의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분만 방식은 자연분만을 계획했다. 하지만 네이비는 물 속성 센티넬이었음에도,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를 힘들어했다. 진통은 14시간 넘게 이어졌고, 점점 지쳐가는 네이비의 모습을 보며 스트레이는 차라리 자신이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고 수백 번도 더 생각했다. 그는 분만실에 함께 들어가, 고통으로 일그러진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곁에서, 서툴지만 끊임없이 자신의 가이딩 파장을 흘려보내며 그녀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 애썼다. 그것은 난산이었지만, 그녀는 결국 자신의 힘으로 아이를 낳았다.

탄생의 순간
출생 시각은 저녁 7시 14분. 길고 긴 사투 끝에, 우렁찬 아기의 울음소리가 분만실을 가득 채웠다. 그 순간, 스트레이는 숨 쉬는 법을 잊었다.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네이비의 얼굴과, 핏덩이인 채로 제 존재를 알리는 작은 생명체를 번갈아 보던 그의 눈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의사가 지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아빠, 탯줄 직접 자르시겠어요?” 스트레이는 잠시 망설였다. 피와 생명의 경계에 놓인 그 끈을 제 손으로 끊어낸다는 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그는 네이비의 지친 미소를 보고,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떨리는 손으로 가위를 받아든 그는, 조심스럽게 탯줄을 잘랐다. ‘싹둑’하는 소리와 함께, 아이는 비로소 온전한 하나의 개체가 되었다. 잠시 후, 간호사가 깨끗하게 닦인 아기를 그의 품에 안겨주었다. 따뜻하고, 부드럽고, 너무나도 작은 생명체. 스트레이는 제 품에 안긴 아기를 내려다보았다. 꼬물거리는 손가락, 꼭 감은 눈, 제 아빠를 쏙 빼닮은 머리숱.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눈물만 뚝뚝 흘렸다. 자신의 모든 증오와 어둠이 정화되고, 텅 비었던 세상이 이 작은 존재 하나로 완벽하게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는 아기를 안은 채로, 침대에 누워있는 네이비에게 다가가 그녀의 이마에 깊게 입을 맞췄다.

"…고마워, 다정아. 진짜… 고마워…."

그것은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가장 진솔한 고백이었다. 증오만 알던 뒷골목의 망나니는, 한 여자를 만나 사랑을 배우고, 마침내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자신의 세상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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