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모든 것이 바뀌었다. 한때는 서로를 파괴할 듯 으르렁거렸던 두 사람은 이제 서로 없이는 숨도 쉴 수 없는 존재가 되었고, 그들의 세상에는 또 다른 우주가 태어났다. 둘을 반씩, 아니, 좋은 점만 쏙 빼닮은 사랑스러운 딸, 하나. 아이의 존재는 스트레이의 거칠었던 세상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았다. 이제 그의 우주는 네이비와 하나, 단 두 사람을 중심으로 공전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하필이면 네이비가 급한 출장으로 자리를 비운 날, 유치원 셔틀버스가 점검에 들어가는 바람에 스트레이가 직접 딸아이를 데리러 가야만 했다. 평소 같았으면 네이비의 몫이었지만, 오늘은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어색하게 학부모들 사이에 섞여, 삐약거리는 병아리 떼 같은 아이들이 쏟아져 나오는 유치원 문만..
Read more블루투스
ARCH 중앙 관리국 - 윤리 위원회 내부 게시판제목: [민원 접수: 긴급] S급 요원 스트레이 및 네이비 관련 복수 민원 병합 처리 건** 작성자: 윤리 위원회 7팀 (익명 보장) 보안 등급: 3등급 (팀장급 이상 열람 권장) 1. 사건 개요최근 2주간, S급 센티넬 네이비(코드네임: NAVY) 및 S급 가이드 스트레이(코드네임: STRAY) 요원의 공공장소에서의 과도한 애정 행각에 대한 민원이 총 17건 접수됨. 민원 내용은 요원들의 사기 저하, 정신적 충격, 업무 효율 감소 등을 포함하고 있으며, 일부 민원에서는 물리적/시각적 피해를 호소하는 사례도 보고되었음. 2. 접수된 주요 민원 내용 (일부 발췌 및 요약)민원 #001 (접수처: 훈련장 제3관제실)민원인: 익명의 A급 화염 속성 센티넬 내용..
Read more체취가 깃든 옷
하늘은 온통 잿빛이었다. 아니, 잿빛이라기엔 너무나도 선명한, 죽음을 예고하는 핏빛이었다. 거대한 운석, ‘라그나로크’라 명명된 종말의 전령이 대기권에 진입하며 타오르는 색이었다. 세상은 미쳐 돌아갔다. 최첨단 과학 기술의 정점이라 자부하던 아이기스의 방어 시스템도, 전 세계의 핵무기를 동원한 최후의 발악도, 그저 거대한 돌덩이에 작은 흠집 하나 내지 못했다. 인류의 오만은 그렇게 우주적 재앙 앞에서 산산이 부서졌다.거리에서는 약탈과 폭력이 난무했다. 어떤 이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쾌락을 좇았고, 어떤 이들은 광장에서 무릎을 꿇고 신을 찾았다. 그러나 스트레이는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는 창가에 서서, 마치 불타는 노을처럼 비현실적으로 아름답기까지 한 종말의 하늘을 무표정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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