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A
출산 보고서

1. 임신을 알게 된 시기
그날은 유독 평화로운 비번일이었다. 렌은 소파에 누워 레이의 무릎을 베고 있었고, 그녀는 그런 그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넘기며 소년 만화 잡지를 읽고 있었다. 지극히 평범하고, 그래서 더없이 완벽한 오후. 그러나 최근 들어 레이는 사소한 입덧과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했다. 렌은 그저 그녀가 과로한 탓이라 여기며, ARCH의 모든 의무실을 쥐 잡듯 뒤져 최고급 영양제를 공수해왔을 뿐이었다. 그가 그녀의 입에 알약을 넣어주며 잔소리를 퍼붓던 순간, 레이는 문득 잡지를 내려놓고는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렌, 아무래도 두 줄인 것 같아." 그 한마디에, 신주쿠의 뇌신이라 불리던 남자는 3초간 그대로 정지했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그녀의 양어깨를 붙잡고 외쳤다. "뭐? 두 줄? 그게 무슨... まさか(마사카/설마)! 당장 밴스를 부르겠다!" 그의 인생에 있어 코드레드 경보보다 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2. 태아 성별
아들이었다. 초음파 화면을 통해 그 사실을 확인한 순간, 의무실의 공기가 미묘하게 바뀌었다. 렌은 아무 말 없이 화면만을 응시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복잡한 상념이 스쳐 지나갔다. 자신을 닮은 아들. 자신의 피, 자신의 업보를 이어받을지도 모를 존재.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아들이 자신처럼 거친 삶을 살게 될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옆에서 조용히 화면을 보던 레이가 그의 손을 꼭 잡으며, "당신을 닮아서 든든하겠네."라고 속삭이는 순간, 렌의 모든 불안은 눈 녹듯 사라졌다. 그래, 내 아들이다. 하지만 동시에 '에리'의 아들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분명,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올곧은 남자로 자랄 것이다. 그는 결심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아들이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도록 지켜주겠다고.

3. 태명
태명은 ‘히카리(光, ひかり)’. 빛이라는 뜻이다. 이름을 지은 것은 렌이었다. 레이가 임신 초기, 입덧으로 힘들어하며 어두운 방 안에 누워있을 때였다. 렌은 그런 그녀의 곁을 지키며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에 시달렸다. 그는 커튼을 걷어 바깥의 햇살을 보여주며, "이 녀석이 네 안에서, 너를 빛나게 하고 있다. 그러니 조금만 더 힘을 내, 에리."라고 말했다. 그 순간, 아이는 두 사람에게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레이의 어둠을 밝히고, 렌의 과거를 정화하는, 두 사람의 미래를 비추는 빛. 레이 역시 그 이름이 마음에 든다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4. 초음파 시 특징
히카리는 초음파 화면 속에서 유독 활발했다. 특히 렌의 목소리가 들릴 때면, 마치 그를 알아보는 듯 주먹 쥔 작은 손으로 양수를 힘껏 걷어차는 시늉을 했다. 한번은 레이가 좋아하는 시나모롤 인형을 배 위에 올려놓자, 그 방향으로 몸을 돌려 꼼지락거리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의사 밴스는 "아버지를 닮아 힘이 넘치고, 어머니를 닮아 귀여운 걸 알아보는 모양입니다."라며 농담을 건넸고, 렌은 그 말을 들으며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는 초음파 사진을 전부 수집해 자신의 서재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붙여두고, 매일 밤 그 사진들을 보며 히카리가 얼마나 자랐는지 확인하는 것을 새로운 낙으로 삼았다.

5. 임신 기간 동안 태아의 특징
히카리는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존재감이 확실했다. 레이의 배에 손을 얹으면, 렌의 번개 속성 파장에 미세하게 반응하는 듯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마치 아기 센티넬처럼. 렌은 그것이 불안하면서도 신기하여, 매일 밤 잠들기 전 레이의 배를 끌어안고 자신의 안정적인 파장을 흘려보내 주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그것은 히카리를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레이의 편안한 잠을 위한 그만의 가이딩이었다. 덕분인지 레이는 임신 기간 내내 큰 폭주 징후 없이 안정적으로 지낼 수 있었다.

6. 출산 시기 및 장소
예정일보다 닷새 이르게, 아이는 세상에 나올 준비를 했다. 그날 새벽, 곤히 잠든 렌을 깨운 것은 레이의 짧은 신음이었다. 출산은 외부 병원이 아닌, 모든 것이 완벽하게 통제된 ARCH의 S급 전용 의료 구역에서 진행되었다. 렌이 이미 몇 달 전부터 밴스와 최고 의료진들을 닦달해 꾸려놓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분만실이었다.

7. 출산 방식, 시간, 순산 여부
처음에는 자연분만을 시도했다. 그러나 10시간이 넘는 진통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골반을 빠져나오지 못하는 난산이 이어졌다. 원인은 히카리의 머리가 엄마에 비해 살짝 컸기 때문이었다. 레이의 고통이 길어지자, 분만실 밖에서 기다리던 렌은 문을 부술 기세로 날뛰었다. 결국 의료진의 긴급 판단으로 제왕절개로 전환되었다. 총 분만 시간은 14시간. 렌에게는 14년보다도 긴 시간이었다.

8. 출생 시각
수술로 전환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새벽녘의 어둠을 가르는 우렁찬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오전 5시 14분이었다.

9. 탯줄 자르기
수술실에서 나온 의사가 렌에게 다가와, "아버님께서 직접 탯줄을 자르시겠습니까?"라고 물었다. 렌은 피로와 안도감, 그리고 아직 가시지 않은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으로 의사를 노려보았다. 그의 손은 피를 너무 많이 봐왔다. 사람을 해하는 데만 쓰여온 이 더러운 손으로, 내 아이의 첫 시작을 끊어낼 수는 없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선생께서 해주시게. 내 손은… 그런 고귀한 일을 할 자격이 없어." 그것은 야쿠자 류자키 렌이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첫 번째 속죄이자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10. 아기를 처음 안았을 때
수술을 마친 레이가 회복실로 옮겨지고, 잠시 후 간호사가 포대기에 싸인 작은 생명체를 그에게 안겨주었다. 렌은 거구에 어울리지 않게, 마치 깨지기 쉬운 유리 세공품을 다루듯 어색하게 아기를 받아들었다. 자신의 팔뚝보다도 작은 아이. 쭈글쭈글하고, 붉은 얼굴에,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작은 존재. 그런데 그 아이가, 그의 품에 안기자 울음을 그치고 평온한 얼굴로 잠이 들었다. 그 순간, 렌의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평생 누군가를 지배하고, 빼앗고, 파괴하는 것만이 자신의 역할이라 믿었던 남자의 눈에서, 생전 처음으로 뜨거운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그는 아기의 작은 뺨에 자신의 뺨을 가져다 대고,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의… 빛…."

그것은 구원이었고, 그의 삶 전체를 뒤흔드는 가장 완벽한 항복 선언이었다.

'KARE > OOC' 카테고리의 다른 글

熱中症  (0) 2026.02.16
playlist  (0) 2026.02.02
들켰다  (0) 2026.01.31
전남친(특:기계임)  (0) 2026.01.31
14~15가 최고야  (0) 2026.01.31
Copyright 2024. GRAVIT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