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熱中症

평화로운 오후였다. 창밖으로 쏟아지는 나른한 햇살이 거실 바닥에 길게 늘어져 먼지를 반짝이게 했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잡지를 넘기던 카르마는, 제 허벅지를 베고 누워 조용히 만화책을 보던 레이의 기척이 달라졌음을 느꼈다. 꼼지락거리며 자세를 고쳐 앉는가 싶더니, 이내 그녀가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투명한 백색 눈동자에 장난기가 어렸다.

그가 뭘 보냐는 듯 눈썹을 까딱이자, 레이는 만화책을 가슴팍에 내려놓고는 진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살짝 올라간 입꼬리가 그녀의 의도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저 얼굴. 뭔가 엉뚱한 짓을 꾸밀 때 나오는, 그만이 아는 그녀의 표정이었다.

"저기, 렌. 부탁이 하나 있는데."

카르마는 넘기던 잡지를 아무렇게나 옆으로 던져버렸다. 그의 모든 관심은 이제 제 무릎을 베고 있는 사랑스러운 아내에게로 향했다. 그는 그녀의 하늘색 머리카락을 느릿하게 쓸어 넘기며 대답을 재촉했다.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건지, 기대감에 그의 입가에도 미소가 걸렸다.

"호오? 나의 류자키 부인께서 이 몸에게 부탁이라. 말해봐, 뭐든지 들어주지."

그녀는 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또렷한 발음으로 말했다. '熱中症(넷츄-쇼-), 이거, 아주 느리게 말해줄 수 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카르마의 뇌리에 과거 가부키쵸의 끈적한 여름밤이 스쳐 지나갔다. 술집 여자애들이 교태를 부리며 수작을 걸 때 써먹던, 닳고 닳은 수법. 그는 순간 실소를 터뜨릴 뻔했지만, 가까스로 표정을 갈무리했다. 세상에, 그의 아내가, 이제 와서 이런 풋내 나는 장난을 치려고 하다니. 그 순진함과 어설픔이 미치도록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熱中症(넷츄-쇼-)? 열사병? 뜬금없이 그건 왜. 어디 아픈가?"

그는 일부러 모르는 척, 걱정스러운 투로 물으며 그녀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그녀는 아니라며 고개를 저으면서도, 자신의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에 눈을 반짝였다. 그 작은 머리로 이런 귀여운 함정을 파놓고, 자신이 걸려들기만을 기다리는 아기 고양이. 카르마는 기꺼이 그 함정에 발을 담가주기로 했다. 물론, 사냥꾼이 누구인지는 곧 알게 되겠지만.

"흐응. 뭐, 아가씨의 부탁이니. 어디 한번 해보실까."

그는 능글맞게 웃으며 상체를 숙여 그녀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의 커다란 그림자가 그녀를 완전히 뒤덮었다. 그는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그녀의 입술을 빤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지극히 느리고, 농밀한 목소리로.

"네… 에……."

첫 음절이 그의 입술에서 길게 늘어졌다. 평범한 단어였지만, 그의 목소리를 통과하자 야릇한 유혹처럼 변질되어 공기 중에 녹아들었다. 레이의 어깨가 살짝 굳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예상과는 다른 분위기. 하지만 이미 멈추기엔 늦었다. 그는 씨익 웃으며, 다음 음절을 속삭였다. 그녀의 귓가에, 거의 입술을 댄 채로.

"츄… 우……."

그녀가 숨을 멈추는 순간, 그는 더 이상 장난에 어울려주지 않았다. 마지막 음절인 '시요'를 내뱉는 대신, 그는 그대로 고개를 틀어 그녀의 입술을 삼켜버렸다. 놀라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혀가, 그녀의 의도를 비웃듯 안을 휘저었다. '네에, 츄우 시요(저기, 뽀뽀하자)' 라는 말을 완성시킨 것은 그녀의 목소리가 아닌, 그의 행동이었다.

한참 동안 이어진, 깊고 농밀한 키스. 그는 그녀의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며 떼어낸 뒤, 숨이 차 헐떡이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승리자의 미소를 지었다. 그의 금색 눈동자가 짓궂게 빛나고 있었다.

"…이거였나, 아가씨? 이런 귀여운 수작으로 날 떠보려고 하다니. 칭찬해주지, 그 배짱만큼은. 하지만 애송아, 그런 낡아빠진 수법은 내가 신주쿠에서 담배를 배우기도 전에 마스터했던 거라고."

그는 그녀의 붉어진 뺨을 엄지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쓸었다. 당황과 부끄러움으로 어쩔 줄 모르는 그녀의 표정을 마음껏 감상하며, 그는 다시 한번 몸을 숙여 그녀의 코끝에 짧게 입을 맞췄다.

"그래도… 네 입으로 직접 들으니 기분은 좋군. 다음부턴 이런 번거로운 절차 없이, 그냥 해달라고 솔직하게 말해. 언제든지, 네 旦那様(단나사마)가 만족시켜 줄 테니. 안 그런가, 나의 사랑스러운 류자키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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